안개
그 아득함을 좋아했다.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상태를. 온통 불투명한 흰색으로 뒤덮혀서는 나를 감싸안는 그 수증기들이 좋았다. 오로지 내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불필요한건 굳이 볼필요가 없으니까.
안개같은 사람. 정신없이 내 눈을 가리더니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 나는 이미 그 말투에 흔들렸는데. 다 흔들리고 나니 사라진 사람. 안개같은 사람.
오랫동안 생각했다. 이제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온종일 머릿속에서 벗어나지않고 떠오르는데. 그게 일상이되어버렸는데. 웃기게도 이젠 그마저도 잊혀져간다. 함께했던 순간들이 선명했었는데. 이젠 아무리 생각해도 흐려진다. 정확히 네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어떤 눈빛이었는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얼굴이었는지. 기억이 잘안난다. 기억도 나지 않는 너를, 아무것도 모르는 너를 그리는 일이 괴로웠는데. 이렇게 잊혀져가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될까. 하루하루 나를 괴롭히던 네가 사라지는 걸 나는 고마워해야할까. 차라리 잘됐다고.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섣부르다. 지금 이 감정조차도 너무 이른 것 같아서 가끔 스스로에게 자문하면서 또 합리화한다. 사람 감정이라는 게 어디 마음처럼 쉽게 조절이 가능하냐고. 한 번봤어도 좋아할 수 있는게 사람마음 아니냐고. 그렇게 합리화하면 적어도 네게 가진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다. 이렇게라도 안하면 내가 너무 비참해질 것 같으니까.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너를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네이름은 뭘까. 나는 또 한 없이 무너진다. 모른다는 건 내게 아무런 희망을 가져다 주지않는다. 그래서 나는 또 무너지고 무너져야만 한다. 네게 가지는 이 감정을 나는 뭐라고 해야될까. 나는 언제쯤 알 수 있을까.
이제는 너를 잊어보려도 노력하고있다. 언젠가 과거가 되겠지. 지금은 네가 너무 보고싶고, 당장이라도 네앞에가서 좋아한다고 소리치고싶은데. 볼 수가 없으면 이 마음도 식어지겠지. 아무리 계속 괴롭혀도 너를 볼 수 없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내 어디에도 네 흔적이 없는데. 네가 존재하는 건 오로지 내 머릿속에서 밖에 없다. 지나가듯 네 얘길 꺼낼 사람조차 없다. 아무도 너를 모른다. 아무도. 이제 청포도 사탕도 먹지 않는다. 아직은 그 향만 맡아도 네가 떠오르지만 흔한 그 향따위에 너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냥, 네가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면 좋겠다. 이제 나좀 놓아달라고. 내 머릿속에서 벗어나달라고.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
왜 네가 내 처음이여서. 나는 왜 이런 괴로움을 느껴야 할까. 적어도 내 주변에 네가 있었다면, 덜 괴로웠을 텐데. 남들처럼 평범하게 좋아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럴 기회조차도 없는 상황에서 어쩌다 너를 만나서. 나는 왜 네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야 할까. 왜 하필 너를 좋아하게 됐을까. 왜, 하필.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