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그림자는 신기루를 찾는다.
이상하다. 어째서 너는 밤마다 생각이 나는지, 다 괜찮아질 무렵 또 나타나서 괴롭히는지.
벗어나지도, 벗어나고싶지도 않은 밤이다. 상기시키고 또 상기시키면 사라질까. 연기처럼 네가 없어질까. 나는 언제까지 너를 생각해야될까. 너는 언제쯤 나를 놓아줄까.
허탈감과 허무함을 웃음으로 무마하려해도 되지않는다. 시계가 가지않는다. 바보같이 시간이 멈춘 줄 알았다. 시간이 가지 않길래 그자리에서 하염없이 너만 기다렸다. 너를 그리고, 또 그리면서 도화지가 일어나 벗겨지고 찢겨질때까지 너만 그렸다. 시간은 말없이 흘렀고 나만 그자리에 서있었다. 너는 없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상기시켰고 시간은 흘렀다.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찢어질 도화지도 남지 않았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너처럼 나도 잊고싶다. 한낫 스친 인연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잊고싶다. 너가 나를 잊었듯이 나도 너를 잊고 싶다. 그러면 덜 불공평하지 않을까. 나는 왜 지금까지도, 이 여름에서도 너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처음 핀 벚꽃을 보며 너도 이꽃을 봤겠지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왜 그 꽃이 다지고나서도 너를 생각하고 있을까. 왜 네가 없는 곳에서도 네 생각을 하며 너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막연함을 증오하면서도 이젠 어쩔 수 없는 희망으로 붙잡고 있을까. 어째서 나는 이 막연함에 멎는 숨을 애써 받아들이고 있을까. 왜 스스로 너를, 기다리고 있을까.
시간을 붙잡고 싶다. 너를 붙잡고 싶다. 하루에 몇번이고 너를 원망한다. 너를 본 나를 원망한다. 그때 네 눈을 보는게 아니었는데. 네 인사를 받아주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면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았을텐데. 너를 봤던 그 순간이 미치도록 원망스럽다. 이제 더이상 나를 아는 척하지 않는 네가 밉다.
이제 더이상 볼 수도 없는 네가 밉다. 왜 하필 그곳에서. 왜 나는 너를 좋아했을까.
가끔은 우연이라는게 어설픈 인연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믿었다. 가끔은 우연이 내게 기대를 불러올 수도 있을거라고 믿었다. 너를 보면서 믿었던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모두, 사라졌다. 너조차도. 내인생에서 너는 잠깐의 신기루였다. 이제 나는 너를 계속 생각할 수록 네가 신기루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게 괴로우면서도 어쩌면 진짜 그럴 것 같아서. 그래서 더 우울해진다. 눈이 멀었을때는 몰랐어도 신기루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을테니. 환상에 불과하니까. 그렇게 너도 사라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