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기억을 찾아냈다.
내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있다. 어떻게 해소될지도. 아마도 이 우울이 나를 집어삼킨 것 같다. 우울은 끝까지 집어삼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듯했다. 내가 잠식되는 순간에 느낄 수 있었다. 몸을 옭아메는 차가움과 뒷목에서부터 뻐근하게 느껴지는 불편함과 통증. 척추를 타고 흘러내리는 불안. 몸 전체를 지배하는 우울. 밤의 끝에 닿아도 사라지지않는 우울은 오히려 햇빛을 받고 더 크게 자라난다. 밝은 밖이 나를 무너뜨리고 햇빛이 나를 비웃는다. 이토록 서럽고 처철하게 나는 무너졌다.
감정을 토해내서는 안된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내 안에서는 감정을 다르게 표현해봐. 네 감정을 다 드러내지마. 억누르는게 많을수록 어긋났다. 완벽하지 못한 내가 미웠다. 그래서 우울이 나를 더 좋아했나보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겁쟁이였으니. 아픔이 깊을수록 우울의 자리는 많아졌다. 빈틈은 나날이 늘어갔다. 삽시간 우울이 번졌다. 속수무책으로 나는 깊어가는 밤에 우울에 잡아먹혔다. 아침이와도, 나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밤의 기억은 지난 과거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소름끼치도록 또렷한 과거를 전해준다. 꿈속에서 나를 놀린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있다.
느리게 걷는다. 밤이 지나가라고, 걷는다. 밤하늘에 뜬 달을 올려다본다. 밤의 기억에 자리 잡게 될 달을 올려다본다. 어린날 수없이 빌었던 기도가 아무런 소용없음을 깨달은 후 부터는 달을 보면서 빌지않는다. 내 구차한 기도는 한 번도 이루어지지않았다. 달이 밝으면 어둠이 어둡지않다. 밤이 밝은 날은 밤의 기억을 다시 쓰기 좋은 날이다. 잊을 수 없어도 이제 쓰여질 기억 한 켠에 달의 자리가 생기면 밤의 기억이 덜 괴로워진다. 어쩌면 훗날 나는 밝은 달만 보며 막연한 기대감에 밤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런 헛된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게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밤의 기억을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