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시간
어쩌면 나는 아직도 똑같을지 모른다.
방황하는 시간이 길다고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더 괴롭히면 내가 더 죽어가지 않을까. 오늘 죽는다고해도, 내일 죽는다고해도 아쉬울 거 하나없는 이 삶에서 나는 지금 뭘 바라고 있을까. 나조차 나를 모르는데.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 사랑해주길 바라지않는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날이 오길 기대할 뿐이다. 그저 언젠가는 나도 죽음이 두려울만큼 이 삶이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아파서 미래의 시간이 두려워서 멈추길 바라는게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도, 지금도 행복할걸 알기에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는 과정이 두려울 뿐이다. 아픔과 고통이 무서워서 떳떳하지 못할 뿐이다. 늘 그렇듯 나는 겁쟁이니까. 어쩌면 이 삶에서 죽음은 늘 일탈의 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죽고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괴로운 이 삶으로부터 나를 유일하게 꺼내 줄 수 있는 탈출구라고 믿었다. 지금도 조금은 그런 감이 없지않아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삶에서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는 왜 당당하지 못할까. 누구는 자신을 더 사랑하라고 말한다. 마음가짐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보일꺼라고. 모르겠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도 나는 이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나 있을까. 누군가는 죽음으로 도망치는 비겁한 자 라고 손가락질한다. 안다. 나도 사랑하는 이를 내버려두고 죽는 자를 원망한다. 자신의 아픔으로 삶으로부터 도망치는 자를 손가락질한다. 그래서 나는 죽지못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내 죽음이 죄가 될거라는 것을 너무 잘알고있다. 그 큰 죄를 짓고서 나는 자유로울 수가 없을 걸 안다. 죽음으로부터 삶에서 해방될 수 없다. 나는 평생 사랑하는 이에게 죄인이될테니까.
방황하는게 무서웠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느긋한데 주위에서 자꾸 밀어서 어쩔 수 없이 발을 디딜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런 부추김에 넘어가지 않는다. 나를 민다면 과감히 나는 나를 미는 사람과 과감히 인연을 잘라버린다. 또 나락을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을 주는 이에게 나는 무언가를 더 베풀 자신이 없다. 끝없는 회의끝에 남는 것은 허무뿐이었다. 방황은 계속될거란 걸 안다. 앞으로, 계속. 나는 방황할테고 불안해할거다. 싫지만은 않다. 가끔은 치가떨리게 증오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일정한 긴장은 팽팽하게 내 삶에 자극을 만들어준다. 움직이게 만들고 상기시키게 만든다. 조금 더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벗어날 수 없는 감정에서 내가 숨을 쉴 수 있게 스스로만든 틈일지도 모른다. 자기합리화하며 나를 위안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이 불안속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누군가의 고통에 빗대어 나의 고통을 비교하고싶지 않다. 누군가는 뭐가 힘들길래, 무슨 일이 있길래. 아픔과 고통을 확인하려든다. 나는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굳이 비교하면서 까지 내 아픔을 확인받고 싶지않고 그들의 아픔에 내 얘기를 더하고 싶지도 않다. 내 얘기를 안주삼아 씹는 사람들을 증오한다. 아픔의 한계를 정하고 저들의 기준에 대고 함부로 고통을 무시하고 짓밟는 그들을 증오한다. 아픔과 고통의 한계는 저마다 다르다. 각자의 아픔을 품고 살아간다. 굳이 확인하지 않고서 그 아픔을 핥아줄 수는 없을까. 굳이 치부를 드러내어 상처를 확인하고 위로되지 않을말로 다시 한 번 상처를 찢어놓고서야 완전한 상처가 되었다며 인정하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시나 나도 누군가의 상처를 드러내 아픔을 확인하고서야 인정했던 적이 있지는 않았을까. 나의 무례함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겠구나. 사죄한다. 아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세상에서는 누구나 작든 크든 어떤 아픔을 하나쯤은 갖고 살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