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보였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을 겆어내고 자리에서 느리게 일어났다. 서랍위에 놓여있던 안경을 들어 썼다. 흐리던 눈앞에 또렷해졌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였다. 이시간에 누가 문을 두드릴까. 문앞에 섰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너머 사람은 문을 열어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왜? 당연한 생각이었지만 누구냐고 물었다. 집에 누가 찾아온적은 드문일이었다.
피자 배달이요.
이시간에 누가? 문을 열지 않았다.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자시킨 적 없어요. 문앞에 대고 말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문너머 사람이 말했다.
당신거에요. 이번에 당신이 걸린거죠. 거절할 수 없어요.
나는 끝내 문을 열지 않았고. 그말을 끝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날이 밝았다. 창문너머로 여자웃음 소리가 희미하게 났다. 창문밖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아홉시였다. 늘상 맞는 아침 소리들이었다. 일상. 서랍에 올려 둔 안경을 찾아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뒤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문앞에서 잠깐 멈칫했지만 창밖너머로 들리는 여자들 웃음소리에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사왔을 때부터 동네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그외에 나쁜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피자배달부만 빼면.
마침 옆집에 여자들도 집밖에서 나왔다.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매력적인 여자들이었다. 옆집에는 두 명의 여자가 사는데,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라고 익히 말했다. 내게 선을 긋기위함인지 아니면 그저 그들의 소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럤다. 생각보다 이질감은 없었다. 눈앞에서 처음보는 모습이지만 꾀나 잘어울리는 매력적인 사람들이었다. 둘 다 긴 생머리에 큰 눈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하얀피부에 검은 머리카락이 매력적이었다. 다른 둘의 조화라기보다 똑같은 이들의 조화랄까. 어쩌면 그들이 왜 처음보는 남자에게 늘 자신을 소개할 때 그들의 관계를 얘기하는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동네는 한산했다. 주말의 아침은 늘 평온하다. 이 동네의 가을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길가에 심어 놓은 나무들은 가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뭇잎들이 메마른다. 단풍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둡게 색을 잃어간다. 여름에는 그나마 푸르지만 가을이 되면 금세 생기를 잃어버린다. 이 곳에 이사 온지 1년이 다되어 가지만 이런 을씨년 스러운 분위기는 적응하기 어렵다. 집앞에 쌓이는 낙엽들은 밟으면 힘없이 금방 으스러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