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왔다. 일상으로.
오후 두시쯤 되서야 눈이 떠진다. 창밖은 이미 밝았는데 눈커풀을 아직도 무겁다. 뜨기힘든 눈을 억지로 뜨며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한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은 무겁기만하다. 다시 잠들기엔 정신은 또렷하고 벽너머로 다른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린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휴대폰을 집어든다. 밀린 연락들을 확인하고 인터넷을 킨다. 나른 아침의 시작이다. 오후 2시에서야 내 아침이 시작된다. 어제 밀린 집안일을 다 끝냈다. 건조대에 널린 빨래를 겆어 개고, 냉장고에 반찬통을 꺼낸다. 밥통에 남은 찬밥을 그릇에 옮겨 담는다. 밋밋한 브런치가 컴퓨터앞에 준비된다. 즐겨보는 예능을 틀어놓고 식사를 시작한다. 밥은 그럭저럭이다. 그렇게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음식냄새로 가득한 방을 환기시킨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지 쌀쌀한 공기가 들어온다. 문을 열고 마저 예능을 다 보고 문을 닫는다. 설거지를 하고 무기력한 몸을 풀기위해 스트레칭을 한다.
영화를 본다. 하루에 한 편은 보는 것 같다. 습관같기도하다. 어렸을 때부터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영화를 봤다. 그때는 그냥 재밌어서 봤는데. 심심하니까 영화를 봤던게 일종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인걸 뒤늦게 깨달았다. 영화를 보면 아무 생각도 들지않는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소리, 인물의 얼굴, 내용, 소품들. 재밌는 영화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본다. 요즘들어 재밌는 영화를 자주봐서 즐겁다. 재미없는 영화를 보면 기분이 나쁘다. 맛없는 음식으로 배를 채운 것처럼 기분이 불쾌하다. 영화에 있어 음향은 꽃이다. 음향이 마음에 들어야한다. 특히나 스릴러는. 가끔 좋은 영화를 보면 영화관에서 못본 걸 후회한다. 그런 영화가 생각보다 많다. 최근에 본 싱글맨도 이쪽에 속한다. 영화관에서 봤다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다. 영화 한 편을 다 보고나면 하루가 다간다. 창밖은 벌써 어둑해져있다. 영화가 끝나면 리뷰를 찾아본다. 이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니까. 내 생각과 같은지 너무 궁금하다. 남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리고 이 영화는 어떻게 해석되는지. 이상하게 영화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 너무 궁금하다. 책은 그저 내 생각만으로 풀어내기 급급한데. 영화는 짧은 시간에 모든걸 토해내고 나는 그걸 있는그대로 받아들인다. 책보다 덜 부담스러워서 내가 영화에 더 집착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밤이 되면 글을 쓴다. 하루종일 나를 괴롭혔던 생각을 토해낸다. 글을 쓰면서 버텨본다. 제발 내 머릿속에서 꺼지라는 암묵적인 경고와 함께.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을 보니 그게 또 아닌 것 같아서 하루종일 괴로워야 했다. 결국 시간이 답인가보다. 무뎌지니 이깟 글조차도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하찮게 느껴졌는데 보고나니 똑같은 짓을 또 반복하고있다. 결국은 시간이 답인 것 같다. 안봐야 정신을 차리지. 지금은 너무 괴로워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빌어먹을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괴롭힌다. 잊혀지면 좋겠는데. 왜 하루종일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정말 이젠 영영 못볼 텐데. 이 그지같은 감정을 나는 또 글에 적는다. 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글에다 분풀이한다. 너를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초등학생도 하지 않은 것같은 유치한 말을 되내이면서. 내 밤은 이렇게 간다. 내 밤 전부가 한 사람으로 가득찬다. 나는 그게 너무 화가나고 짜증나서 또 글을 쓴다. 그렇게 밤은 부질없는 행동의 반복으로 깊어간다.
사람이 그립기도 한다. 주말이나 쉴 수 있는 날은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가끔 전시회를 보러가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귀찮으면 안나간다. 알바를 가기도 하지만 이번 달은 안 갈 예정이다. 가기싫으면 안가는 거다. 이 그지같은 알바의 유일한 장점이 안가고싶은면 안가면 된다는 거다. 그외엔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하루종일 집안에 혼자있다보면 친구들이 보고싶을 때가 있다. 가족이, 정확히 엄마가 보고싶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어디도 가고싶진않다. 나갈 생각만 하면 스트레스부터 받는다.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오늘도 친구가 만나자고 했는데 우연으로 만날 수 없게 되자 아쉬움반 즐거움 반이었다. 무슨 마음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못봐서 아쉬운데 안나가니 다행인 그런, 애매한 감정. 가끔은 애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싶은데. 귀찮다. 어쩔 수가 없나보다.
학교가기 싫다. 안친한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하는건 참 불편하다. 특히나 얼굴은 아는데 말은 잘 안 섞어 본 그런 사람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관곈데. 학교가면 그런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괴롭다.
긍정적인 일상을 쓰고싶었는데 싫어하는 거 투성이라 별로 밝은 내용이 없다. 주변사람들은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낙관론자라기 보다 비관론자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나는 낙관론자가 되고 싶었는데. 내 예상과 달리 나는 불평이 많은 사람이었다. 단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뚜렷할 뿐인데. 반대로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면 다 싫어하는 거라 그렇게 볼 순 있겠다. 그게 뭐 잘못된걸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갖추면 만족하는 스타일인데.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게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있는게 좋고 단거 좋아하는게 다인데. 요구를 거절했다고 해서 비관론자가 되어야 한다니. 조금은 억울하다. 아니 아주 많이 억울하다. 나름 밝은 인생을 살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사람이라니. 씁쓸하다. 학교가기 싫은 건 누구나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나도 마음맞는 사람과 만나서 얘기하고 같이 다니는거 좋아한다. 다만 남들에 비해 그 과정이 더 길뿐이지. 아무튼 간에 정신없던 시간들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내 하루가 마음에 든다. 이 나른하고 무력한 느낌이 너무 좋다. 어제 주토피아를 다시봤는데. 주디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도 그렇게 살면 닉같은 애가 내 일상에 들어올까. 이 일상에 변화가 없다면 그럴일 없겠지. 씁쓸하지만 닉같은 애가 없어도 되니까 이 무덤덤한 일상이 무너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뭐가 어떻든 간에 나는 이 일상이 너무 좋고, 사랑한다. 앞으로도 나는 내일상을 이렇게 보내고 싶고 이렇게 보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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