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나는 흰색 신발을 찾지 않을거다. 왜 그토록 흰색 신발을 찾아다녔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는 사라진 흰색 신발을 따라 너를 찾고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너를 찾아헤매던 불쌍한 눈으로. 굳이 찾지 않아도 된다. 네 흔적은 생각보다 흐리고 선명해서 잊으려고 노력하면 잊을 수 있다. 이제는 내가 놓아줄 수 있을 것같다. 흰색 신발이 없어도 나는 걸을 수 있다. 흰양말이 더러워지더라도 나는 찾을 수 없는 신발을 찾지 않을거다. 어디로 갔을까. 너는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있을까. 이따위 질문을 하지 않을거다. 평생 풀릴 수 없는 물음을 질질끌고다니며 나를 괴롭히지 않을거다. 알았다. 흰색 신발은 혼자 네게로 갔다. 내가 영영 찾을 수 없는 네곁으로 나대신 가버렸다. 너를 다시 만난다면 나는 흰색 신발을 신고있겠지. 아마, 이제 이 꿈을 꾸지 않을 것 같다. 너를 잊으면 모든게 해결될 일이다.
현실에는 있는 흰색 운동화가 왜 꿈에서는 너에게로 가버린 걸까. 그렇게라도 닿고싶었던 내 간절함이었을까. 긴긴밤 너를 생각하며 지낼때마다 얼마나 괴로뤘는지 모른다. 아득한 네 생각에 웃음짓다가도 금세 원망스러웠다. 이 순간에 너를 생각하고 있는 나를, 내 앞에 섰던 너를 원망했다. 그렇게 네 생각으로 감정을 뒤집다보면 잠이 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또 흐름이 끊긴 채 흰색 운동화만 찾아다녔다. 맨발로 흰색 신발만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내가 뭘 찾고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뭘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찾아다녔다. 막연히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미친듯이 찾아해맸다. 그러다, 그게 흰색 운동화라는 걸 깨달았다. 운동화를 찾지 못했어도 내가 뭘 잃어버렸는가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마저도 생각하지 못한다면 너무 답답해서 화가 날 것 같았다. 근데 이제는 그 흰색 신발이 틈만 나면 없어져서 나를 괴롭혔다. 대체 너는 언제까지 나를 괴롭힐까. 못된 사람.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지. 미련하고 못된 나는 늘 너에게로 죄를 떠넘긴다. 그러면 적어도 이 오랜시간의 죄가 씻겨나갈 것 같았다.
네게 닿을 수 있다면 닿고싶었다. 아니, 이젠 내 찌든 미련이 너무 깊어서 네 앞에 선다고 해도 나는 자신이 없을 것 같다. 네가 나를 잊었다는 두려움도, 아쉬움도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난만큼 잊는건 당연한거니까. 나는 네게 아무런 의미의 존재도 아니였을테니. 이젠 너를 그리워하는 마음조차도 네게 미안해져서 함부로 너를 떠올리는게 힘들어진다. 그만큼 잊어야되는 시간도 빨라지는 것 같다. 일상에 휩싸이다보면 너는 금세 잊혀지겠지. 어쩌면 생각하는게 익숙해서 그 행위에 미련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희망을 가져본다. 그렇게라도 너를 잊을 수 있다면 시간이 오래지나서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때도 처음봤던 그 감정이 되살아날까. 이런 바보같은 생각은 버려야 겠다. 내가 너를 찾지 않는다면 좋겠다. 잊혀지겠지. 잊을 거다. 흰색운동화는 영영 찾을 수 없을테니까. 네게 간 흰색 운동화를 나는 끝내 찾지 못했다.
'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었다 (0) | 2019.10.11 |
---|---|
신기루 (0) | 2019.09.03 |
명멸하다 소멸하고 다시 명멸하고 소멸하고 (0) | 2019.08.22 |
기억의 벽을 타고 갈라진 틈이 자꾸 벌어진다. (0) | 2019.08.19 |
통증이 멎는 시간 (0) | 2019.07.10 |